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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yin-sof/▒▒ 땡이신장일기

번개를 위해 막둥이와의 이별에 대처하기

'슬퍼하지 마세요' '힘내세요'를 말하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도 잘 되지 않고, 감당이 안 돼서 보낸 시간들...

업친데 덥친 격으로 지난 주는 멘붕으로 더 심해지다가, 진짜 뒤늦게 정신을 차려가는 중입니다.

 

막둥이를 보내고 나서 첫 주는 사실 실감이 되지 않아서, 문득문득 약주려고 혹은 밥 먹이려고 막둥이를 찾다가 자각할때 빼고는 별로 울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아 이제 옆에 없구나를 자각한 후부터는 매일 악몽에 시달렸어요.

 

병원에서 여러 튜브들을 연결한 채, 의식을 거의 잃은 막둥이가 누워있고, 전 쌤이랑 같이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하며 살려보려고 하는 장면인데, 끝도없이 계속 같은 장면만 반복돼요. 그렇게 누워있는 막둥이만 바라보면서 울다가 깨고...이 꿈을 꾸기 싫어서 지쳐 쓰러져서 자려고 밤도 여러번 새봤지만, 그때 뿐이더라구요.

 

막둥이얘기만 꺼내도 눈물부터 나는지라 집에서도 얘기하지 않고, 남자친구는 제 블로그에 오면 바로 보이는 막둥이 사진때문에 블로그도 못 들어가겠다고 하고, 사진도 못 꺼내봤었어요. 번개도 막둥이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거나, 현관에 가서 울거나 나가자고 떼를 써서...그렇게 한 달간을 외면한채 지냈었던 것 같아요.

 

 

신경성약물이나 래머디, 허브 등을 써 보라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마음의 상처가 약으로 치유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음은 그렇게 쉬이 치유되는게 아니더군요. 심리치료하시는 분이 슬픈 걸 드러내고, 죽음을 받아들이라는데 말처럼 쉽게 되질 않았거든요.

 

 

죽음을 받아들이고, 좋은 기억들로 추억을 하면서 살아가자라고, 다짐하고 다짐하고, 그러다가 막둥이를 위해 향을 피우면서 막둥이와 추억팔이를 시작했어요. 49재까진 향을 피워주려구요.

 

전 종교가 없어요. 그래서 막둥이 장례도 제 방식(?)대로 했는데, 49재가 불교의 의례지만, 전에 김수환추기경님도 49재 미사를 지냈던 것 같고, 명복을 빌어주는 의미로 제 방식으로 해석해서 하고 있어요. 그냥 사진을 두고, 매일 아침 물을 새로 떠주고, 향도 피우고, 제가 먹을때 막둥이 앞에도 놔 주는 것으로 시작했죠.

 

며칠 되진 않았는데, 조금 바뀐 것들이 생겼어요. 아침마다 막둥이랑 인사도 하구요. 생각나면 자연스레 옛날 얘기도 하고요.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착한 아이였으니 그 곳에서 행복하라던가 혹 다시 태어나면 내게 다시 와주렴 같은 이야기들이에요. 가끔 미안했던 것도 사과하고요^^ 번개 앞에서도 막둥이 얘기를 계속 해주고 있어요. 알아듣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번개도 천천히 바뀌고 있어요.

 

어젠 크리스마스라 가족과 베리타르트를 먹었는데, 막둥이도 먹으라고 놔 주구요. 특별한 것 없이 그냥 그렇게

 

 

 

가끔은 안고 싶고, 쓰다듬어 주고 싶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겨울엔 번개와 막둥이를 양팔에 끼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있으면 하나도 춥지 않았는데, 지금은 한 쪽이 허전하지만...그럴땐 번개를 더 꽈~악 끌어 안아요^^

 

 

 

번개는 슬개골탈구와 기관지 변형으로 인한 호흡곤란, 핵경화증 외에 CKD1,2기 정도로 보고 있어요. 적어도 1~2년까진 CKD3기로 가는 것을 막겠다가 목표인데, 제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지난 한 달동안 잘 챙겨주지도 못 하고, 번개 스스로도 막둥이와 헤어져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던 터라 뭔가 안 좋아진 듯 해요. 만성질환으로 아가들 간호하다 보면 임상증상들 잘 보게 되잖아요. 한 달동안 번개가 얼마나 안 좋아졌을지 걱정입니다. 며칠 전 또 악몽을 꾸면서 호흡이 없어지는 번개를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향을 피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문이었거든요.

 

 

마음의 치유가 잘 안 될때도 있어요. 보고 싶은 것이 더 강해서 눈물이 날때도 있고요. 하지만, 스스로를 위해서도, 살펴야할 다른 가족이 있다면 더더욱 슬픔에만 잠겨 계시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씁니다. 물론 저도 이랬다 저랬다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