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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ixir/▒▒ 생각해보기

난 개를 키울 자격이 있나요?

5년 전, 한 소녀가 메일을 보내왔다. “블로그를 보았는데, 우리 강아지도 신부전 같아요. 어떡하죠?” 유사한 메일을 많이 받아왔기에 몇 가지 팁과 동물병원 진료를 권하는 답신을 보냈다. 연이어 도착한 두 번째 메일을 보고, 바로 답신을 취소했다. 머리가 복잡했다. 마침 아픈 반려 강아지와 고양이를 위한 힐링카페에서 반려동물의 병원비를 빌려달라는 사기사건이 발생했던 터라, 경계심도 있었다. 밤새 고민을 하다 연락을 했다. 그렇게 소녀와 소녀의 아픈 개를 만났다.

 

고3이 되는 소녀의 가족은 고령의 할머니와 어릴 적부터 키운 개였다. 소녀의 부모님은 중학생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가끔 토를 하고 기운이 없던 소녀의 작은 개는 점점 안 좋아졌다. 핏기는 별로 없었고, 암모니아 냄새 가득한 숨을 뱉었다. 배를 채울 만큼 마시던 물도 이젠 잘 먹지 않았다.

 

소녀가 동물병원을 가는 건 경제적으로 무리였다. 유기동물이 아니어서 지자체나 동물보호단체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보호소 앞에 데려다 두면 치료받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다. 한번은 모 커뮤니티에 집에서 치료할 방법을 묻는 글을 올렸는데 ‘병원 안가고 뭐 하냐’, ‘돈 없으면 키우지 마’라는 댓글에 조용히 탈퇴를 눌렀다.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방법도 찾을 수 있기에 병원부터 갔다. 만성신부전 말기였고, 주요 합병증을 거의 다 가지고 있었다. 소녀의 개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전 얘를 키울 자격이 없나 봐요.” 소녀는 모든 것이 돈이 없는 자신 때문이라 생각했다.

 

남은 시간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눴다. 최대한 덜 아프게 편안하게 보내주고 싶다 했다. 내 경험을 토대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챙겨줬다. 이별을 준비하며 소녀는 매일 울었다. 소녀의 개가 눈치 챌까 몰래 그리고 조용히.

 

“오늘 스스로 밥을 먹었어요^^ 그런데 자꾸 흘려요”
처음 듣는 소녀의 웃음소리였다. 소녀의 개도 그 웃음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이별의 시간은 빨리 다가왔다.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소녀의 개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소녀는 많이 슬퍼했다. 마음 한편에 자리한 홀가분함에 놀라, 자신은 나쁜 주인이라고 했다.

 

소녀는 소녀의 개를 추억할 자격이 없다며, 모든 걸 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친구들이 관련 이야기를 하면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길을 가다 저 멀리 비슷한 강아지가 보이면 길을 돌아갔다. 입양 얘기라도 들리면 “돈이 없으면 키우지 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소녀가 동물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소녀의 상처는 치유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소녀가 소식을 전해왔다.

 

과제를 하는데 소녀 기준 중산층인 팀원이 “어제 우리 집 강아지 피토했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얼결에 소녀가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냐?”라고 물었는데, “동물이 무슨 병원을 가, 괜찮아 지겠지”라는 답에 순간 팀 분위기가 싸해졌다. 소녀는 혼란스러웠다.

 

오랜만에 소녀는 소녀의 개를 떠올렸다. 미안한 마음에 추억조차 못 하던 소녀의 개는 왜 이제 왔냐는 듯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것 같았다.

 


소녀가 묻는다. “난 개를 키울 자격이 있나요?”

 

 

 


(사진은 막둥이와 번개입니다. 소녀의 개와는 관련이 없습니다.)